현세록(現世錄) 

 

국회의원 한광옥 (國會議員 韓光玉 : 1942 ∼34世)

공(公)은 정치인(政治人)이다. 이름은 광균(光均)이오 자(字)는 광옥(光玉)이다. 사인(思仁)의 아들이고 창수(昌洙)의 손자이며 송재공 충(松齋公 忠)의 17대손 으로 어머니는 남원양씨(南原梁氏)이니 영무(榮茂)의 따님이다. 공(公)은 1942년 1월 29일 전라북도 전주 (全羅北道 全州)에서 태어났으며 항상 신의(信義)를 중요시하며 살아왔다. 1963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문학과를 수료(修了)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62년 학생정치외교협회 회장과 전국민권 수호학생총연맹 준비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1980년 신민당 최고위원 보좌역(補佐投)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1981년 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관악구(冠岳區)에 당선되어 국회에 진출하였다. 1982년「김대중석방」을 주장하며 정도(正道)를 걸었고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民主化推進協議會)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1986년「건국대 농성사건」때 민주주의를 외치는 학생들의 편에서서 민주주의 수호운동을 하다 구속되어 옥고(獄苦)를 치루었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지역 최고의 득표율(得票率)로 당선되었으며 1990년 국회노동위원회(國會勞動委員會)위원장으로 노동정책에 크게 기여하였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 통합민주당 사무총장, 최고위원, 부총재로 활약하였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副總裁)및 국가경영전략회의의장을 역임하였고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야권 대통령후보단일화 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대통령후보단일화 협상을 성공시킴으로써 공의 정치력(政治力)뿐만 아니라 통합·조정력(統合·調整力)과 추진력(推進力)을 동시에 갖춘 정치인으로 평가(評價)받았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노·사·정위원회 위원장(勞·使·政委員會 委員長)으로 활동하면서 경제위기로 첨예(尖銳)하게 대립된 노사간의 협상을 성사시킴으로서 정치지도자(政治指導者)로서 그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청주한씨 중앙종친회 고문으로 있다. 부인(夫人) 진양 정영자 (晋陽 鄭英子)는 승(昇)의 따님이고 1남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정호(晸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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