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록(倡義錄 : 義士)

 
참봉공 한용순(參奉公 韓容淳 : 高宗 11年(1874)∼1938 28世 )
공(公)의 휘(諱)는 용순(容淳)이고 자(字)는 성진(星振). 초명(初名)은 종술(鍾述) 또는 종술(宗述). 호(號)는 행담(杏潭)이다. 기창(基昌)의 아들이고 수신(守愼)의 손자이며 절제공 중손(節制公 仲孫)의 14대 손이다. 어머니는 경주 정씨(慶州 鄭氏)로 익술(益述)의 따님이다. 공은 고종(高宗) 11년(1874) 5월 18일생이다. 어려서부터 한문(漢文)을 익혀 1903년 3월 순릉참봉(順陵然奉)에 서임(敍任)되었다. 1906년 4월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의 의병 창의(義兵 倡義)에 참여하여 항일활동(抗日活動)을 시작하였다.
공은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 노적산(井邑市 七寶面 水淸里 露積山)에서 왜적(倭賊)과 교전(交戰)하다 좌측 두퇴부에 총탄(銃彈)을 맞아 골절상(骨折傷)을 입고 불구(不具)의 몸이 되었다. 공은 의병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자학(自虐)한 나머지 실성(失性)한 사람처럼 가장(假裝)하고 일제(日帝)를 저주(詛呪)하면서 일본패망(日本敗亡)을 기원(祈願)하다 1938년 12월 24일 65세로 졸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실성한 모습을 보고 한심란(韓心亂)이라 하였다 하는데 일본패망(日本敗亡)을 외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배위(配位) 고흥 유씨(高興 柳氏)는 원상(源相)의 따님이고 아들은 규남(圭楠), 규동 (圭東)이다. 공의 배위(配位) 고흥 유씨(高興 柳氏)는 1963년 12월 21일 졸하니 수천리 산해좌 (水川里 山亥坐)에 쌍조(雙兆)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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