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록(倡義錄 : 義士)

 
군수공 한응필(都守公 韓應弼 : ?∼?)
생몰년 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1863년(철종 14) 용강현령(龍岡縣令)을 지내다가 1866년(고종 3) 연안부사가 되었다. 같은 해 9월에 병인양요가 발발하자 강화도 및 한강연안의 수비군이 편성되었다. 한성근(韓聖根)은 문수산성(文殊山城)을 지키고, 양헌수(梁憲洙)는 정족산성(鼎足山城), 이기조(李基祖)는 광성진(廣城鎭), 신관호(申觀浩)는 양화진(楊花津), 백낙현(白樂賢)은 행주(幸州), 임한수(林翰洙)는 여석현(礪石峴), 유완(柳琮)은 파주, 신숙(申蕭)은 장단을 지킬 때에 당시 초토사(招討使)로서 연안부에서 진을 치고 수비를 맡았다. 그뒤 1867년 부평부사, 1870년 홍주목사, 1878년 서천군수를 역임하였다.

 
번호     이 름 조회
661 한용국 2480
662 한응필 2570
663 한준 2486
664 한국언 2141
665 한봉도 2383
666 한문기 2344
667 한봉조 2298
668 한상필 2342
669 한중건 2438
670 한진산 2531
671 한병수 2329
672 한창형 2436
673 한동근 2453
674 한덕용 2577
675 한덕유 2326
676 한도원 1973
677 한병기 2799
678 한시대 2341
679 한철수 2411
680 한재열 2374
1,,,313233343536373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