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록(學行錄)

 
청평군 한언(淸平君 韓 堰 : 세종 30년(1448)~성종 23년(1492) 15세)
 공은 성종 때의 문신이다. 휘(諱)는 언(堰)이고 자는 옥경(沃卿)이다. 이양공 명진(夷襄公 明진)의 아들이고 감찰공 기(監察公 起)의 손자이며 어머니는 고녕현부인(古寧縣夫人)으로 시 문경 제(諡 文景 제)의 따님이다. 공은 세종 30년(1448)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예종 1년(1469) 부사과(副司果)로 진사시에 장원하고 성종 5년(147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사성이되고 1475년 형조참의 겸 부총관이 되었다. 1477년 천추사(天秋使)의 통사(通事) 조숭손(趙崇孫)에 관련되어 사직되었다가 1479년 행호군(行護軍)으로 복직 선위사(宣慰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청평군(淸平君)으로 습봉(襲封 : 諸侯가 靈智를 이어 받음)되고 1480년 이조참의, 공조참의를 거쳐 판결사, 장흥부사가 되었다. 1485년 대사간, 1486년 호조참의, 1487년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을 지내고 이어 도승지 겸 예문관 직제학 대사헌, 상서원정, 병조참지, 형조참판, 이조참판을 지내고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겸하였다.
성종 23년(1492)에 명황제(明皇帝)가 태자를 책봉하고 사신을 보내어 조서(詔書)를 반포하니 조정에서는 사은사와 황태자의 교육시킬 사람을 보내게 되니 학식이 많은 공을 6월 3일 보내게 됐다. 그러나 공이 임무를 수행하다 회동관(會同館)에서 그 해 10월 10일 졸하니 황제가 예부랑중(禮部郞中)인 임전(林전)을 보내어 치장(治葬)케 하니 성종조도 조제(弔祭)를 의식에 따라 하였다.배위 정부인 밀양 박씨(配位 貞夫人 密陽 朴氏)는 봉례랑 인경(奉禮郞 仁敬)의 따님이고 아들은 첨정 홍윤(僉正 弘潤), 현감 홍택(縣監 弘澤, 无后), 선전관 홍주(宣傳官 弘澍), 어모장군 홍연(禦侮將軍 弘演)이다. 공은 성종 23년(1492) 10월 10일 명나라 서울의 회동관에서 졸하였다. 수행했던 큰 아들 홍윤(弘潤)이 구(柩)를 안고 돌아오는데 황제는 예부낭중의 명지관(名地官) 임전과 관리를 딸려 보내 11월에 이곳 계좌 정향의 언덕에 치장케 하였다(성종조에서도 같음). 임전이 황제에게 복명하기를 “소가 누워서 젖 먹이는 형상으로 9대가 재상이 나올 곳에 묘를 썼습니다” 하니 황제가 이르기를 “그 집안에 화(禍)와 환(患)이 생길 것이니 예방하고 오라”고 하였다.
임전이 다시 와서 산맥팔수룡(山脈八首龍 : 韓墓山)에 무쇠를 끓여 붓고 큰 돌로 괸돌고개를 만들어 사람을 통하게 하고 산혈(山穴)을 끊는 등 예방을 하고 돌아갔다고 전한다. 신도비(神道碑), 문관석(文官石) 등 석물을 많이 보내왔다. 배위 정부인 밀양 박씨(配位 貞夫人 密陽 朴氏)와 쌍조(雙兆)이며 이 지역은 공에게 내린 사패지(賜牌地)이다. 묘표음기(墓表陰記)는 성종 24년(1493) 2월 제학 권 건(提學 權 建) 撰이다. 공의 신도비는 대리석류로 명나라에서 가져온 것으로 부천시 향토유적이다. 묘비는 공의 8대손 금천군수 숙이 약290년전에 세웠다.
묘 :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계수동 산 15 세향일 (10월5일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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