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식(韓鳳植) 公은 평북 의주(平北 義州)가 고향이며 청년단 간부로 1920년 미국의원단(美國議員團)이 한국에 왔을 때 전덕명, 이만복(全德明, 李萬馥)등과 같이 삐라를 뿌리고 시위운동(示威運動)을 주도하여 도시(都市)를 폭파하기로 계획하다가 일경(日警)에게 체포되어 경성감옥(京城監獄)에서 8년간 복역(服投)하던 중 죄수(罪因) 대우개선(待遇改善)문제로 옥리(獄吏)와 투쟁하다가 순사(殉死)했다.